이베리코 돼지의 자연방목 기간에는, 넓고 푸른 스페인의 대초원 데헤사에서 이렇게 여유로운 생활을 즐깁니다. (돈이요 직촬영)

이베리코 돼지의 자연방목 기간에는, 넓고 푸른 스페인의 대초원 데헤사에서 이렇게 여유로운 생활을 즐깁니다. (돈이요 직촬영)

이베리코 하면 도토리와 자연방목을 하는 건강한 돼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로지 이베리코의 ‘베요타(Bellota)’ 등급만이 자연방목을 하며 도토리를 먹습니다. 베요타라는 단어 자체가 스페인어로 ’도토리‘를 뜻하며, 그 외 세보(Cebo), 세보 데 캄포(Cebo de Campo)는 자연방목의 의무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세보, 세보 데 캄포 등급이 ’자연방목‘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베리코 돼지 농장은 오래된 스페인의 전통인 만큼 그 사육방식은 농장 별로 제각각입니다.

따라서 등급 여하와 무관하게 모든 돼지를 자연방목으로 키우면서, 베요타로 승인 받고자 하는 특정 개체들만 베요타 등급을 인정받는 기준에 준하게 기르는 경우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이베리코 돼지라도 브랜드별로 품질차이가 많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베요타 등급의 돼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방목으로 길러진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스페인 법령에서 규정하는 베요타 등급 인정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몬타네라‘라고 불리는 비육기간에만 방목을 하면서 위 기준을 충족시키면 베요타 등급을 인정받을 수 있고, 따라서 베요타 혹은 100%베요타라고 해서 반드시 어릴 때부터 자연방목으로 길렀다는 사실을 보장하지 않아요.

그럼 왜 자연방목을 하고 도토리를 먹이나요?

위에서 소개드렸던 베요타 등급 인증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대부분 ’자연방목‘ 그 자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비육‘, 즉 살을 찌우는 것입니다.

별도의 비육농장에서 살을 찌우는 경우를 세보 데 캄포(Cebo de Campo. 여기서 Campo가 ’농장‘이라는 뜻입니다), 아예 자연의 도토리를 먹여 살을 찌우는 경우가 ’베요타‘ 입니다.

즉, 세보 데 캄포나 베요타나 결과적으로 살을 찌우는 방식의 차이이지 결과적으로는 돼지들의 살을 찌우는 것이 주 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좀 덜 먹은 돼지(앞쪽)과 넉넉히 먹은 돼지(뒷편). 포동포동한 턱살이 보이시나요? (돈이요 직촬영)

좀 덜 먹은 돼지(앞쪽)과 넉넉히 먹은 돼지(뒷편). 포동포동한 턱살이 보이시나요? (돈이요 직촬영)

돼지들 살을 왜 이렇게 찌우려고 하나요?

우리는 고기를 먹을때 이베리코 등급을 따져서 먹지만, 사실 스페인 현지에서 이 등급은 스페인 전통 돼지다리 염장육인 ’하몽(Jamón)‘을 위한 등급이에요. 하몽은 스페인에서는 우리나라의 김치와 비슷한 느낌으로 정말 모든 요리에 골고루 사용되며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식품이에요. 정말 스페인 길거리나 음식점 어디를 가시더라도 하몽으로 만든 음식, 하몽 다리가 걸려있는 모습, 심지어 하몽 등의 가공육들만 전문으로 파는 점포를 곳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여기서 이베리코 순혈도가 높을 수록, 그리고 도토리를 먹고 비육을 시킬 수록 이 하몽에서 느껴지는 이베리코 특유의 지방의 풍미와 식감이 놀랍도록 좋아집니다. 잘 만들어진 이베리코 100% 베요타의 하몽을 입에 넣으면 부드러운 식감은 물론이고 풍부하고 고소한 지방질이 사르르 입에서 녹을 때 느껴지는 풍미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이베리코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모든 요소, 즉 자연방목, 베요타, 이베리코 순종 이런 것들은 전부 다 하몽을 위한 것들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리자면, 고기는 하몽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을 판매하는 정도라고 감히 말씀드려도 될 정도지요.